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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먹고

ep.4 용기를 가져가겠습니다

2022.02.15

소설가가 입사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맥주 공장 이야기를 쓰고, 알랭 드 보통이 히드로 공항 이야기를 쓴 것처럼 소설가가 우리 회사 이야기를 쓴다면? 우리들이 좋아하는 이 시대의 젊은 작가. 소설가 박서련이 직접 경험하고 쓴 다섯 편의 우아한형제들 이야기

 

 

가장 좋아하는 방식으로 아침을 먹었다.

모닝 메뉴를 별도 제공하는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에서 핫케이크와 스낵랩을 사 오고, 설탕 프로스팅을 입힌 아몬드 콘플레이크와 우유를 곁들인 식사. 먼저 콘플레이크가 아직 바삭할 때 몇 숟갈 뜨고, 짭짤하고 고소한 스낵랩을 해치운 다음, 시럽에 적신 핫케이크와 부드럽게 풀어진 콘플레이크와 프로스팅이 녹아들어 달콤해진 우유를 함께 먹는다.

좋아, 잘 먹었으니 이제 미루고 미뤄온 ‘그’ 원고를 써 볼까.

모처럼 일찍 일어나 평소에는 거르던 아침 식사를 든든하게 한 까닭은 한참 동안 고민한 일과 직면할 용기를 얻기 위함이었다.

이번 이야기에 만큼은, 용기가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전에도 이미 분명했던 바지만, 팬데믹 상황을 맞이하면서 배달 서비스 플랫폼의 존재감은 더욱 뚜렷해졌다. 어떤 이들에게는 배달 서비스야말로 비대면 생활을 유지하게 해주는 귀중한 옵션. 또 어떤 이들에게는 성별과 나이와 자격을 따지지 않는 건강한 일자리. 또 어떤 이들에게는 가게에 손님을 마음껏 받지 못해도 식당 문을 열어둘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수단…… 이 흐름을 역행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한 끼 시켜먹을 때마다 쌓이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눈감아줘야 한단 말인가?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이 지점에서 자기소개를 제대로 해 봐야겠다.

 

안녕하세요? 저는 현대인입니다.

그중에서도 프리랜서죠. 시간적 여유는 다른 현대인들에 비해 많지만 돈은 별로 없는데요, 일상적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이어서 (제 기준) 미식으로 기분전환을 하곤 합니다. 그래서 배달의민족은 저의 일상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어요. 다른 현대인들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요즘은, 앞으로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난 몇 해는 여행은커녕 콧바람도 마음껏 쐬기 힘든 시기였잖아요. 맛있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싶은 건 인간의, 적어도 한국인의 천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플라스틱이 너무 많이 사용되는 듯한 게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다 이러고 살잖아요? 맞죠?

 

‘다 이러고 살잖아요’

 

스스로를 더도 덜도 없는 보통사람으로 믿는 나에게, 나의 양심에 이보다 더 힘이 되는 말은 없다.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건 아니잖아. 나는 내가 일해서 번 내 돈으로 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내가 먹고 싶은 걸 주문했을 뿐인데 그게 무슨 불법은 아니잖아, 오히려 좋은 일 아닌가? 나는 경제를 순환시키는 작은 톱니바퀴로 기능하는 중인데? 모두 하는 일인데 그게 그렇게 나쁜 것일 리가 있어? ‘다 이러고 살잖아’.

 

보통사람인 내게는 때때로, 옳게 생각되는 행동일지라도 그게 ‘남들이 안 하는’ ‘유난스러운’ 짓일까봐 꺼려지는 순간이 있다. 그럼에도 가끔은 작가적 자의식(이런 말을 쓸 때 특히 내게는 용기가 필요하다)을 앞세워 좀 더 정의로운 선택을 할 때가 있다. 이 꼭지를 쓰겠다고 자신 있게 말했을 때는 아마도 그런 상태였던 것 같다. ‘우와, 작가님은 정말 환경을 생각하는 분이구나’라는 말을 듣고 싶은, 약간 한심하고 우스꽝스러운 작가적 자의식이 한껏 드높았던 상태.

 

“플라스틱 다이어트라는 제목으로 배민그린을 실천하는 에세이를 써 보려고 해요. 제 생각에는 배달 전문점에서 개인 용기로 메뉴를 포장해오면, 배달 서비스를 이용할 때와 비교해서도 물론이지만 집에서 똑같은 메뉴를 직접 해 먹을 때보다도 쓰레기가 덜 나올 거거든요. 분명 의미 있는 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대략 이런 말을 했었지, 아마?

각설하고,

 

누구에게나 그럴싸한 계획이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

(Everybody has a plan until they get hit.)

– 마이크 타이슨

 

이번에 계약한 꼭지들 대부분은 우아한형제들이 내게 제공하는 견학과 인터뷰를 바탕으로 쓰겠지만 직접 체험한 배민그린 이야기, 이것 하나만큼은 내가 직접 체험한 이야기로 채우겠다고 약속했고, 분명 배민 이용자 및 우아한형제들 구성원들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와 빵빵 터지는 웃음을 보장하였는데…… 플라스틱 다이어트 실천을 그렇게 많이 하지 못했고 마감일을 앞두고 돌이켜보니 별로 쓸 얘기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실패냐 하면 그건 또 아닌 것 같은…… 그런데 이걸 어떻게 가공해서 읽을 만한 이야기로 만드냐 하면 그건 또 애매해버리는……

 

다시 한번 각설하고,

성공사례에서 추출하는 방문포장 이용 매뉴얼 플라스틱 다이어트 실전편.

 

준비물 

  • 보온보냉가방(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데 나는 마침 새로 산 보냉백이 귀여워서 자랑삼아 굳이 들고 다니고 싶었다)
  • 용기(容器, container)
  • 배달의민족이 설치된 스마트폰

 

실행방법

  1. 먹고 싶은 종목(한식, 중식, 치킨… etc.)을 떠올리고 포장 가능 식당 지도에서 식당을 선택한다. 또는 배민 포장 지도를 보면서 땡기는 집이 있는지 알아본다.
  2. 메뉴를 선택하고 주문한다. 주문 시 사장님께 보내는 메시지란에 “제가 용기를 가져가겠습니다” 라고 쓴다. 식당 자체 포장용기에 미리 담아두고 기다리시지 않도록.
  3. 식당에 전화를 걸어 “방금 연어 반 참치 반 주문한 모모동 땡땡빌라인데요, 용기를 가져갈 생각인데 어느 정도 크기면 될까요?” 여쭤본다.
    – 일식집 사장님은 “평소 12피스 초밥을 포장할 때 270mm*130mm용기를 사용한다”고 대답하셨고 내가 가져간 용기는 그것보다는 조금 작았는데 이 정도면 된다고 하셨다.
    – 매운갈비찜집 사장님은 “평소 라면을 끓이는 냄비보다 조금 큰 것”을 챙기라 귀띔하셨고 내가 가져간 전골냄비를 보고 고개를 끄덕이셨다
    – 치킨집 사장님은 “아무 반찬통이나 가져오시면 되는데…… 크기가 적당한 게 없으면 여러 개 들고 오세요” 라고 하셨다.
    음! 이게 정답인 것 같다. 적당한 크기의 용기가 없으면 작은 걸 여러 개 들고 가면 된다.
    (*사실 전화로 용기 사이즈를 확인하는 것은 꼭 필요한 과정이 아니지만, 사장님이 나의 메시지를 미처 못 보고 일회용 용기에 음식을 담아버릴 경우를 방지하는 차원에서도 미리 전화를 드리는 것이 좋다)
  4. 음식이 준비될 것으로 예고된 시간보다 빨리 집을 나선다. (제 경우에는 통화 끝나자마자 보냉백에 용기 넣고 나갔습니다.)
  5. 사장님께 빈 용기를 건넨다. 음식이 담긴 용기를 챙겨서 원하는 장소로 이동해 먹는다.

 

나를 당황시킨 지점은 이 일련의 과정이 너무…… 쉽다는 것이었다.

쉬우면 좋잖아? 실제로 이 과정에서 나온 플라스틱 쓰레기는 집에 없어서 못 챙긴 일회용 양념 종지 정도가 정도고, 그럼 성공이잖아? 성공인데 쉬우면 최고잖아? 심지어는 무엇까지도 좋았냐 하면 못생긴 일회용 포장 용기 대신 내가 고르고 골라 공동구매로 산, 예쁘고 튼튼한 용기에 소담스럽게 담겨있는 음식의 비주얼까지도 좋았다. 최고의 최고의 최고잖아……?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어찌 되었든 나는 이 소재로 글을 써야 하는 사람 입장이 아닌가. 내 입장에서는, 예상치 못한 난관이 있고 내가 그걸 어찌어찌 극복한 묘수가 있고, 하여 실패가 예상되었지만 결국에는 성공했다! — 그래야 진짜로 좋다. 그런데 이건 뭐, 짜증이 나 버릴 정도로 모든 것이 순탄한 전개였다. 마침 내가 먹고 싶은 메뉴의 식당은 대체로 지근거리에 있었고 내가 방문한 식당의 사장님들은 모두 짠 듯 다짜고짜 전화해 용기의 크기를 묻는 내게 전혀 짜증 내지 않고 답변해주셨으며…… 심지어는 서비스도 주셨다.

(*라고 쓰는 것이 약간 걱정이 되는데 서비스 안 준다고 불친절한 사장님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또한 당연하지 않은가, 환경 문제를 떠나 요즘 일회용 포장 용기 값도 만만치 않다는데 제 발로 찾아와 음식을 담아갈 용기를 내놓는 손님을 미워할 사장님이 있겠는가. 진상 손님으로 찍혀 식당 사장님과 통화로 언성을 높이는 상상, ‘저희 브랜드는 내규상 정해진 포장용기만 사용합니다라며 거절당하는 상상 등을 해 보며 실패할 경우 입게 될 내상에 예비하고 있었는데, 실제로는 그런 거 없고 대부분의 사장님들이 개인 용기를 지니고 온 포장 손님을 좋아해 주셨다는 거다.

 

따라서 유일한 장벽은 우리집 내 자리에 편안히 앉아 밥상을 받는 수고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 하나일 텐데 사실 이것도 그렇다, 자리에 앉아 배달로 받은 음식을 풀어 헤치는 과정이 과연 늘 편하기만 했는가. 꽁꽁 싸 묶은 봉투를 풀려다가 도저히 안 풀려서 힘으로 뜯으려다 그것도 잘 안되어서 가위를 찾아 간신히 개봉한 뒤, 밑반찬으로 딸려온 것을 보고 아 이 반찬은 필요 없는데 탄식하며 도로 뚜껑을 닫아 상 저편으로 밀어두는 등의 실랑이를 벌여오지 않았는가. 아무리 일회용 포장용기라도 분리수거를 하려면 애벌설거지 정도는 해야 한다던데, 빨간 기름 양념은 또 얼마나 지워질 줄을 모르는가……!

 

반면에 본인 용기에 포장하는 길을 택하면, 스스로의 눈으로 조리과정과 포장 과정을 목격할 수 있고(식당 바이 식당입니다만) 설거지가 잘 되는 용기에 정확히 내가 먹고 싶은 것만 받아올 수가 있는 것이다.

한편 저의 이번 플라스틱 다이어트 도전에 실패…… 라고 부르기는 애매하고, 적절하게 실행되지 못한 사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므로 그 또한 정직하게 털어놓아 봅니다.

 

  • 기본적으로는 일체의 인위성을 배제하고 싶었다.
    괜히 어렵게 썼지만 그냥 “내가 먹고 싶은 걸, 내킬 때만 포장했다”는 뜻이다. 어쩌겠습니까? 저의 양심은 이런 모양입니다. 프로젝트에 돌입하기 직전 예시로 내가 썼던 음식 중에는 김치찌개(우리 모두의 소울푸드가 아니겠어요?)가 있었는데 우리집 근처에는 포장이 가능한 김치찌개 전문점이 없었다. 그렇다고 그걸 분식집 김치찌개 등으로 대체할 의사 역시 없었기 때문에(다들 아시죠, 그거랑 이거랑 같은 음식이 아니라는 거) 그냥 다른 냄비 요리를 포장해 먹어보는 것으로 극적인 내적 합의에 이름.
  • 카페 메뉴를 이용하지 않았다.
    여기에도 그럴싸한 내적 사유가 있다. 카페 메뉴는 식사 메뉴에 비해 조리가 매우 신속한지라 카페 바로 앞에서 배민 앱을 켜서 주문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기본적으로 외출을 별로 하지 않는 편이어서 그럴 일도 없었다.
    한편 이 지점에서 ‘카페 앞에서 앱을 켜는 것보다는 그냥 키오스크나 직원을 통해 주문하는 쪽이 편하잖아?’ 라는 합리적인 의구심도 드실 텐데요…… 배민 앱을 거쳐서 주문하면 주문 내용이 정확하게 기록 및 전달되고 자체적으로 포인트도 쌓이니까요.
  • 가장 아쉽고 뼈아픈 사례. 이 도전에 임하면서 내가 가장 알고 싶었던 것은, 아이스크림 전문점에 내 용기를 가져가면 아이스크림을 담을 수 있는지였다.
    아이스크림이란 용적량은 식사메뉴에 뒤지지 않지만 제조 및 포장 시간은 카페 메뉴보다도 짧을 수 있는 메뉴다. 하여 700ml 용기와 보냉백을 챙기고, 아이스크림 가게 바로 앞에서 배민 앱을 켰다. 만반의 준비를 다 한 상태였다는 뜻이다.
    그런데 허망하게도 포장 지도에서는 아무리 찾아도 우리동네 아이스크림 가게가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다, 배달은 되는데 포장은 안 되다니. 우리 동네만 그런가? 포장 주문은 굳이 앱을 거치지 않는 고객들이 더 많아서 그런가? 빈 용기가 든 보냉백 손잡이를 팔에 끼고 양손을 호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터덜터덜 돌아오는 길은 무척 춥고 외로웠다.
    도전조차 해보지 못하고 돌아섰으나, 아이스크림의 개인용기 포장은 어려울 수밖에 없을 거라는 짐작이 이미 있기도 했다. 아이스크림 브랜드들은 배달계에 등장하기 전 이미 오래전부터 포장 위주로 운영되어 왔고 따라서 그간 누적된 노하우를 집약한 방식으로 포장을 하지 않나. 녹기 쉽고, 한번 녹았다 얼면 식감이나 맛이 제대로 복원되지 않는데 자체적인 기준을 벗어난 방식으로 포장을 해 줬다가 아이스크림이 녹았다, 흘렀다는 항의를 듣기라도 하면 그 책임은 누가 진단 말인가. 따라서 개인용기 포장을 거절당한다 해도 십분 이해 가능했겠지만, 여태 누적되어온 사례들처럼 내 예상을 멋지게 뒤엎고 포장해줄 수도 있다는 기대 역시 있었다.
    아이스크림 포장 가게 사장님들 보고 계신가요? 제품이 훼손되어도 항의하지 않을 테니 개인용기 포장 가능하게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개인용기 포장 요청은 원래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겠다는 메시지라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사실 내가 배달의민족 앱을 애용하는 이유 중 가장 비중이 큰 것은 주문 과정에서 쓸데없이 정신력을 소모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다. 매번 주소를 말할 필요도 없고, 말을 조금 더듬어 메뉴 이름을 잘못 말하거나 잘못 들어 재차 확인할 염려도 없으며, 주문기록이 단단히 남기 때문에 원치 않는 음식이 배달되었을 때 이게 내 잘못인지 가게 사장님 착각인지 책임소재를 분명히 할 수 있다는 점 등.

 

또 하나의 사실, 용기를 지참해 포장해오는 것은 조금 불편하다. 말할 나위도 없는 사실이다. 궁둥짝을 움직여 밖으로 나가 날씨를 확인해야 한다는 점은 물론, 배달 주문일 때는 대면하지 않아도 괜찮았던 가게 사장님과 만나기도 하고 전화통화를 하는 수도 생긴다는 게 썩 편치 않다. 그 불편함을 무릅쓰고 굳이 하는 게 제로고, 다이어트고, 그린인 것 같다.

 

이번 체험을 하면서 느낀 바가 그렇다. 실천은 불편하다. 그건 당연하다. 편하라고 만들어둔 것들을 얼마간 거부하면서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니 불편이 따라오는 것은 정말이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의외로 실천은, 상상보다는 덜 불편하다. 나를 정말 당황스럽게 하는 것은 이 깨달음이다.

 

의외로 어렵지 않은 그 일에 유일하게 필요한 건 용기뿐이라는 사실.

할 만해서 하는 일이며, 감수해야 하는 작은 불편에 비해 장점이 많은 데다, 의외로 ‘남들이 안 하는’ ‘유난스러운’ 짓도 못 된다.

 

 

소설가가 입사했다

ep.1 주문하신 소설가 왔습니다

ep.2 채식도 개발이 되나요

ep.3 훈련은 실전처럼, 실전은……. 싫어요

▶️ ep.4 용기를 가져가겠습니다

ep.5 The 큰 집으로, 더 Next Level로

박서련님 사진

박서련소설가
주문하신 소설가입니다.
오다 울어서 조금 짭니다.

하나만 더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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