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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과 서비스 소설가가 입사했다

ep.1 주문하신 소설가 왔습니다

2022.02.15

소설가가 입사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맥주 공장 이야기를 쓰고, 알랭 드 보통이 히드로 공항 이야기를 쓴 것처럼 소설가가 우리 회사 이야기를 쓴다면? 우리들이 좋아하는 이 시대의 젊은 작가. 소설가 박서련이 직접 경험하고 쓴 다섯 편의 우아한형제들 이야기

이야기를 여는 가장 멋진 방식 중 하나는 편지로 시작하는 것이다. 내가 아는 멋진 소설가 한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 “단편소설은 한 마디로 ‘부름(calling)’이다.”(이어 장편소설은 부름에 대한 응답까지를 포함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확실한 기억은 아니다.) 그 부름이란 것 을 가장 고상하고 우아한 형식으로 나타내는 게 아마도 편지일 거라는 건 나의 의견.

무궁무진한 예를 들 수 있다. 오래전 떠나온 고향에서 급히 돌아와 달라는 전갈을 받는다. 전쟁에 임하는 군인이 집으로 전보를 띄운다. 외계 생명체가 발한 것으로 추정되는 아주 미약하고 해독하기 힘든 파장이 지구의 탐지망에 수신된다.

왓슨, 이 글을 확인하는 즉시 내가 지시한 장소로 와 주게, 자네의 친구 홈즈로부터— 지금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난 이미 당신 곁에 없겠지. 이 편지는 1876년 영국에서 시작되어…… 이건 좀 멀리 간 것 같군요. 죄송합니다.


좌우간 이 글을 쓰고 있는 소설가도 메일을 한 통 받았다. 이야기가 이미 시작됐다는 뜻이다. 다소 사적인 부분은 생략하되 맥락과 주요 정보는 살려 그 메일의 초반부를 요약하면 이렇다.

이 글의 장르를 추리라 치면 이 부분에서 찾아낼 수 있는 정보값만도 상당할 것이다.


보낸 이? 우아한형제들
받는 이? 박서련 작가
편지의 목적? 협업 제안
또한? 우아한형제들과 박서련의 협업은 이번이 처음이 아님

그렇다. 이 편지의 수신인은 이전에 배달의민족 뉴스레터 <주간 배짱이>의 ‘요즘 사는 맛’ 코너에 4주간 글을 실은 적이 있다. 그때 쓴 에세이에서 다룬 음식은 쌀, 돈까스, 국수. (첫 주차는 식생활과 내가 쓸 에세이의 방향성을 다루며 날로 먹었다.) 후에 기업브랜딩팀 관계자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저희 내부에서는 ‘요즘 사는 맛’ 코너를 보고 글에 나온 음식이 먹고 싶어지면 그 주는 성공이라고 하는데, 작가님 글을 보고 도대체 철원 오대쌀이 얼마나 맛있길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껏 고향 덕을 본 적이 별로 없다고 여겨왔건만 철원 오대쌀 홍보를 통해 나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얘기다. 철원 오대쌀이 그 정도로 맛있는 것도 사실이고. 그런데 오대쌀이 맛있어서 맛있다고 쓴 덕분에 무려 배.민.하고 콜라보를 하게 된 소설가가 있다? 실화입니다. 소설가의 설레는 마음의 값을 구하시오.

메일의 나머지 내용을 보자.

무엇보다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부분은 역시 레퍼런스 파트였는데, 감히 내가 아니 제가 아니아니, 쇤네가 알랭 드 보통이나 무라카미 하루키랑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라는 것은 아니고(라고 쓰는데 어쩐지 콧잔등에 땀이 난다) 당연히 그들이 곱빼기라고 치면 저야말로 보통내기지만, 해당 산업 분야에 문외한이지만 보고 들은 경험을 글로 얼마간 표현할 수 있는 ‘소설가’라는 직업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적합성과 유사성이 보인 것이겠거니.


덧붙여 무라카미 하루키는 49년생, 알랭 드 보통은 69년생, 나는 89년생으로 각각 20살씩 차이가 난다. 소오름. 하루키가 2차 산업(제조업), 알랭이 3차 산업(운송업), 서련이가 4차 산업(정보통신업)을 바라보며 에세이를 쓴다는 사실 또한 생각해볼 만한 지점일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한국의 한 젊은 소설가가 한국을 대표하는 4차 산업 기업의 면면을 탐방하고 글을 써보도록 요청하는 것은, 우아한형제들만의 부름이 아니라 시대의 부름이기도 한 것이다.

뜻하지 않게 가슴이 웅장해졌으므로 다시 원래 규모로 줄여보도록 하자.

기획 의도와 실행자들의 의지가 얼마나 뜻깊든 결과물은 할 수 있는 만큼만 나오게 마련이라 써야 할 글의 꼭지와 그 글들의 소스를 어떻게 공급받을지를 결정하는 데에도 시일이 꽤 걸렸다. 우아한형제들 특유의 기업문화를 보여줄 수 있는 테마는 매우 많이 있었지만 테크 까막눈인 내가 두세 번 견학한 것만으로 이해해서 쓸 수 있는 건…… 매우 한정적이었다 는 의미.

우여곡절 끝에 제공된 글감과 내 수준에 맞는 주제의 교집합을 추려 다섯 가지 꼭지를 정했고, 자료를 얻기 위해 우아한형제들에서 일하는 분들과 몇 번 미팅을 하기로 했다. 전 지구적 팬데믹 상황이어서 대부분의 미팅은 우리 모두의 회의실 ZOOM에서 해결했지만 몇 군데는 직접 방문을 피할 수 없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우아한형제들의 조직문화를 가꿔가고 있는 ‘피플실’.

하……

뜬금없는 소리로 들리시겠지만 MBTI 테스트를 얼마나 신뢰하시는지? 개인적으로 그건 짜장면과 짬뽕 중 무엇을 선택하겠느냐고 묻고 짜장면을 선택하면 당신은 짜장면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라고 말해주는 테스트라고 생각한다. 참고로 나는 짜민샹찍이다. 짜장면 좋아하고 민트초코 좋아하고 마라탕과 샹궈중에는 샹궈를, 부먹과 찍먹 중에서는 찍먹을 선호한다는 뜻이다. MBTI 성격유형도 마찬가지다. 선택에 따른 결과가 무척 당연하고 선명해서 굳이 그걸 말이라고……? 라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정직한 테스트인만큼, 짧은 시간 내에 성향을 소개하는 데에는 나름 효과적이라고 보기도 한다.

내 MBTI 유형 맨 첫 글자는 I 다. 대문자 I. 외-내향성을 의미하는 두 글자 E와 I 사이에서 단 한 문항도 E에 가까운 답안을 고르지 않는, 티 없이 맑은 I. 낯을 너무 가려서 친구네 집 반려동물한테까지 반사적으로 경어를 쓸 때가 있다. 그런 저에게 일일 피플실 구성원이 되어 출근해 보라니……

몇 시까지 어디로 가면 되나요?
돈 받고 하는 일에 I가 어딨습니까.

자아를 조금 버리고 몽촌토성역 앞 ‘큰집’에 방문했다. 일전 미팅 관계로 다른 빌딩에 방문한 적이 있어 우아한형제들 헤드쿼터에 해당하는 건물이 분산되어 있으며 각각 큰집, 작은집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참 이름을 잘 짓는 회사란 말이지. 늘 눈에 탁 띄고 귀에 확 감기는 제목을 짓느라 끙끙대는 직업을 지닌 사람으로서는 부러워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부분.

피플실 공간이 있는 큰집 6층에 엘리베이터가 닿자, 살짝 열린 엘리베이터 문틈으로 한 글자에 한 장씩 A4용지 꽉 차게 인쇄해 세로로 붙인 ‘과’ ‘연’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문이 다 열렸을 때 보인 전체 문장은 이러했다.

서 련 님 배 민 은
천 생 분 ♥


어디선가 웅장한 행진곡이 울려 퍼지기 시작하더니 블루투스 스피커와 선물꾸러미를 든 천사들이 나타났다. 그분들이 피플실 직원이었다.
웃기려고 지어낸 얘기 같지만 틀림없는 실화다. 분명히 자아를 집에서 분리수거하고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내 속의 작고 작은 I가 식은땀을 흘리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중에 이거 뭐라고 써야 사람들이 믿을까?

뭐라고 쓰긴 뭐라고 쓰나. 장르가 에세이니 정직하게 써야지.

🥳 “작가님 ‘요즘 사는 맛’에 쓰신 자기소개 보니까 배민 VIP ‘천생연분’ 등급이라고 해서 웰컴 메시지를 이렇게 써 봤어요.”

실로 나의 배민 이용실적 등급은 신용카드 사용으로도 온라인 서점 사용으로도 찍어본 적 없는 최고등급이다. 월 20회 이상 배민 앱을 이용해야 도달하는 ‘천생연분’.

🤗 “웰컴을 늘 이렇게 하지는 않아요……”

뜻밖의 성대한 환대에 당황한 내 기색을 읽어내신 듯, 다른 한 분이 덧붙여주셨다. MBTI 가 I로 시작하는데 장차 배민에서 일하고 싶은 지원자 여러분에게 이 사실이 큰 힘이 되기를.

6층 로비에서 사원증과 신규입사자에게 주는 웰컴 패키지 꾸러미를 받고 ‘큰집 투어’를 시작했다. ‘이 공간을 함께 만들어가는 우리의 주인공들’이란 의미에서 우아한형제들 구성원들의 사진으로 온 벽면을 장식한 18층 공간. 탕비실을 벽으로 막아두지 않고 플로어 로비를 향해 오픈된 형태로 구성한 다음 ‘우물가’라고 이름 지은 연유. 지금까지 배민에서 선보인 서비스들을 명화 패러디 형태로 만들어 전시한 갤러리. 층마다 스포츠 테마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했으며 그 꽃이라 할 수 있는 육상 종목 테마 층에는 구성원들이 백 명 넘게 모여서 회의할 수 있는 트랙방이라는 회의실(말 그대로 트랙이었다)이 있다는 사실도 빼놓을 수 없겠다. 


발길이 머무는 곳마다 왜 그렇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이유가 있었고, 그 이유들 이 모두 ‘배민다움’을 지향하고 있었으며,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우아한형제들에 ‘공간디자인실’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 “회사의 규모가 커지고 구성원들이 많아지면 필요한 공간도 많아지고 공간의 쓰임새도 다양해지잖아요. 보통은 이럴 때 공간 구성을 위해 외주 인테리어 디자인팀과 계약을 하겠죠. 그런데 아무리 실력이 좋은 팀이어도 ‘배민다움’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공간을 구성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어요. 배민에서는 공간에 그걸 표현하고 적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단 사실을 매우 초기부터 고려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공간디자인실이 생겼죠.”

우아한형제들에서 함께 일하게 된 새로운 동료에게 가장 먼저 다가가는 부분이 이 웰컴 패키지와 공간투어가 포함된 웰컴온이란 프로그램이고, 그걸 전담하는 이들이 피플실 사람들이라는 설명도 이어졌다. 과연 그렇지. 물건과 환경, 물리적인 부분에서 이 회사가 지향하는 가치들을 느낄 수 있도록 구성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공간과 사람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커뮤니케이션을 맡는 사람들도 있어야겠지.

🥳 “새로 온보딩하는 분들도 이 분위기를 맛보셔야 하는데…… 직접 와서 체험하는 게 가장 좋겠지만 지금은 기존 구성원들도 대부분 재택근무를 하고 있고, 많은 분들이 매주 합류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그래서 현장에 함께 하지 못하더라도 이 문화와 분위기를 가능한 많이 느끼실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수단을 고민하고 있어요.”

예를 들면?

🥳 “저희가 직접 카메라를 들고 공간투어 라이브를 진행하는 등의 시도가 있었어요. 반응이 매우 좋았지만 인터넷 연결 환경 같은 변수가 있어서 더 효율적인 방식이 필요하겠더라고요.”

설명을 듣고 보니 피플실은 정해진 어떤 업무를 수행하는 부서라기보다, 신규 입사자들에 게 ‘배민다움’의 첫인상을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사명을 지향하는 집단처럼 느껴졌다. 수단과 방법을 막론하고 그 사명에 충실한…… 천사들인 줄 알았는데 특전사들인가? 그런 생각이 불현듯 났다. 투어를 마치고 피플실과 이웃한 부서의 분들과도 (대문자 I 다운 긴장으로 뻣뻣하게 굳은 채)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아 피플실의 역할에 대한 설명을 좀 더 들었다.

🤗 “우아한형제들 안에서도 피플실은 뭐하는 곳인가? 라는 질문을 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세요. 신규 온보딩하는 분들을 위한 웰컴 메시지를 드리는 것 외에도 우아한형제들에서 일하시는 분들 누구나 ‘여기에서 일하니까 너무 행복하다’라고 생각하실 수 있게 하는 게 저희의 역할이에요.”

일터에서 느끼는 행복한 감정과 배민다운 경험의 순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실제로, 이직이 흔한 IT업계에서는 보기 드물게도 5년, 10년 이상의 근속연차 돌파 사례가 상당한 수를 기록하고 있다고.

문득 떠오른 건 대학 시절 학생회에서 학생복지 차원에서 시험기간 선착순으로 간식을 나눠준다던 이벤트였다. 한 사람 앞에 밥버거 하나 음료수 하나, 합쳐서 삼사천원 하는 걸 한 두 번, 그것도 선착순으로 나눠주는 게 무슨 복지? —라고 생각했던 경험. 그런데, 나처럼 심사가 꼬인 사람들도 물론 있었지만 그 작은 챙김과 돌봄에 진심으로 감사해하는 학생들이 더 많았다. 내가 간과한 건 마음이었다. 학생회 사람들 개개인과는 딱히 잘 알지 못하는 사이라도, 외롭고 고된 시험공부 도중 누군가 나를 생각하고 있음을 확인받는 마음. 이 학교의 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내게 기울어지는 작지만 확실한 관심.

피플실 사람들이 하고 있는 일도 그런 것이었다. 이 회사가, 내가 여기에서 일하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구나, 여기서 계속 일하고 싶게 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 하는구나 라는 메시지를 빈틈없이 전달하는 것. 물론 피플실에서 주는 걸 밥버거와 음료수와 비교할 수 없다는 사실 또한 말할 나위가 없는 것이지만…… 그 사실을 더욱 가슴 찡하게 만드는 점은, 피플실에선 일하는 사람 천 오백명에 이르는 우아한형제들 구성원들 모두의 행복을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는데(TMI: 한 서너 번 만날 때까지는 쭉 낯가림을 한다) 한 마디 여쭙지 않을 수 없었다.

“피플실 분들이 배민 구성원 모두의 행복을 책임지고 있다면…… 피플실 분들의 행복은 누가 책임지죠?”
어쩐지 <여러분> 가사같은 질문이 나와버렸다.

🤗 “저희의 노력을 알아주는 분들이 있다는 걸 느낄 때, 충분히 보상받았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일하시는 분들 중에서도 비슷한 질문을 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저희만 이렇게 받으면 피플실 분들은 누가 챙겨요? 그런 질문이요. 그 질문만으로 엄청 행복해져요.”

🥳 “저희한테 소소한 선물이나 편지를 보내주시는 분들도 계세요. 너무너무 감사하죠. 저희한테는 일인데, 일을 열심히 해서 누군가 감동을 받았다는 뜻이니까요.”

🤗 “저는 평소에도 친구들에게 선물하는 걸 좋아해요. 선물을 받고 기뻐하는 사람들을 보는 게 너무 좋아서 또 어떤 선물을 할까 고민하는 게 무척 즐거워요. 그런데 이 일은 회사가 저한테 선물을 하라고 지원하는 거잖아요. 저는 그래서 직업만족도 자체가 엄청 높아요. 이 일을 하게 된 것 자체가 행복해요.”

배경음악으로 세인트 어쩌구 소년 합창단의 상투스 같은 곡을 틀어줘야 할 것 같은 분위기가 되었다.

🥳 “그럼 작가님도 오늘은 피플실 구성원이니까 저희가 하는 일을 함께 해 보실까요? 작가님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업무를 생각해봤는데, 저희가 웰컴 패키지를 포장할 때 쓰는 이행시를 지어주셨으면 해요.”

그러고 보니 내가 받은 선물 보따리에도 내 이름으로 된 이행시가 붙어있었다.

서: 점에서 주로 어떤 코너를 많이 가세요?
련: 애소설 보다는… 전 이젠… 서련님 책 읽으려구요~~~~ 우아한형제들에 오신 것을 환영해요!!!

저보고 이걸 쓰라고요?
지금요?
여기서요?
진짜요?

왜요?

애초 기획서에 단순 견학 방문이 아니라 ‘배민에 소설가가 취업한다면’이라는 느낌으로 실제 가능한 업무를 수행해보는 게 어떻냐는 부분이 있긴 했다. 진짜 시킬 줄은 꿈에도 몰랐으나.

“작가님은 프로니까!” 라며 만화같이 반짝반짝 눈빛 공격을 삼면에서 하시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모니터 앞에 앉았다. 이행시라니, 이렇게 말과 글을 사랑하는 회사도 드물 것이다. 비슷한 말을 최근 어떤 행사에서 들은 기억이 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문학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생각해 보세요. 우리는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시를 짓는 민족입니다. 이행시 삼행시. 시라고요, 시. 그러니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주어진 시제를 각행의 첫 글자에 두고 너무 터무니없는 구성을 피하도록 하는 N행시의 원칙에 더하여, 신규 입사하는 이들에게 위트 있고 마음씨 넉넉한 우리 회사라는 첫인상을 줄 수 있도록 써야 하고, 당신의 입사를 환영한다는 메시지도 담아야 하는 것이었다.

🤗 “입사 첫날은 누구에게나 뜻깊은 날인데 지금은 팬데믹 상황이어서 대부분 언택트로 업무를 시작해야 하거든요. 직접 맞이하지 못하는 아쉬움에 대한 고민과 더 뜨겁게 환영하고 싶은 진심을 담아 쓰기 시작했는데, 반응이 좋아서 어느덧 당연한 루틴이 됐어요.”

인중에 뻘뻘 맺히는 습기를 느끼면서 그럭저럭 열몇 사람의 이름으로 이행시를 짓고 인쇄한 다음 택배 박스에 붙이면서 들은 이야기다. 아니, 그렇다면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사서 이런 고생을 한단 말인가. 나야 그 주 신규 입사자 열 몇 사람에게 보내는 이행시를 지었을 따름이지만 원래 담당자님은 지금껏 수백 명의 이름으로 이행시를 지어오셨을 텐데, 그게 원래는 안 해도 되는 일이었단 말인가. 그런데 그건 ‘정해진 업무가 아니라, 일하는 이들의 행복이라는 사명에 충실한’ 피플실의 특성을 설명해주는 한 마디이기도 했고, 새로운 깨 달음을 주는 말이기도 했다. 우리가 아는 모든 창의적인 작업은 사실 ‘시키지도 않은 짓’에서 나왔다는 사실.

🥳 “이번 주에 온보딩하는 분들께 꼭 말씀드릴게요. 이번 이행시는 무려 소설가가 지었다고!”

안 하시면 안 될까요…… 너무 부끄러운데…… 라는 말을 너무 부끄러워서 차마 하지 못했다. 반나절 내내 낯가림을 해놓고도 일일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는 길에는 갑자기 근원을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샘솟아 나도 진짜 우아한형제들에 입사지원서 한번 넣어봐? 라는 생각이 들었다. 피플실의 존재를 알게 되었기에 든 생각이었을 것이다. 오히려 나같이 소심하고 부끄러움을 타는 구성원일수록 더 마음 쓰며 다가와 환대를 건네줄 사람들이 있다는 것. 다음 순간에는 불현듯 불안감도 들었다. 사실 이 날 일일 근무에는 나의 작업들을 케어해 주시는 저작권 에이전시 실장님도 동행하셨는데, 우리 실장님도 나랑 똑같이 생각하신 끝에 “작가님 저 이 일 그만두고 우아한형제들 지원하려고요”라고 하시면 어떡하나? 실장님도 같은 걱정을 하셨을까? 실장님 저 이딴 거 다 때려치우고 지금이라도 개발을 배워볼까 합니다……

부름으로 시작한 이 이야기는 응답으로 끝난다.
몇 주 지나 기업브랜딩팀으로부터 연락이 온 것이다. 내가 쓴 웰컴 이행시를 받고 들어온 신규 입사자들이 이행시를 무척 좋아해 주었다는 소식. 단체채팅방에서 직접 언급해준 분도 계시고, 택배 상자를 사진으로 찍어 인증해주신 분도 계시다고 들었다. 내가 뭐라고 썼는지 다는 기억이 안 나고 쓰는 동안 너무 민망하고 죄송해서(왜?) 뒷머리와 목덜미 사이가 삐죽삐죽 일어서던 느낌만 생생했는데, 그럼에도 그 답신들이 너무 감사하고 기뻐서 어디에든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피플실에서는 ‘이번 이행시를 소설가가 썼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자기 이름으로 된 이행시가 택배 상자를 장식하고 있는 것을 확인한 이들은 그것을 소설가 박서련에게서가 아니라 우아한형제들로부터, ‘우리 회사’로부터 받은 첫 메시지라 여겼을 것이다. ‘우리 회사’에서 일하는 누군가가 자기 이름을 한동안 골똘히 생각하며 어떤 인사를 건넬까를 고민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러니까 그분들이 보내온 답신은 그때 아주 잠깐이나마 나도 정말 배민에 속했음을 증명한다. 일할 때는 완전히 혼자인 직업을 가진 탓에 한동안 ‘우리’를 경험하지 못했던 내게, 그건 아주 귀하고 소중한 응답이었다는 이야기다.

박서련님 사진

박서련소설가
주문하신 소설가입니다.
오다 울어서 조금 짭니다.

하나만 더 볼까?

몇 개만 더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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